내가 아는 정답 | 진정한 위로의 법칙 3
내가 아는 정답 | 진정한 위로의 법칙 3
행복으로 가는 길 | Find Happ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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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가는 길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지난 두 편의 에세이에 이어,
위로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주제로
마지막 그 세 번째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저는
수술 후 끝나지 않는 통증과 약물 부작용,
그리고 주변의 위로와 건의 속에서 직접 겪었던 경험들을 통해,
위로의 말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희망과 감사로 이겨내려는 노력 속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더 깊은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깊은 고통의 시간 속에서
제가 어떻게 무너지고,
또 그 안에서 어떻게 진정한 위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는지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그럼,
그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
그러나 결국 찾아온 우울
수술 후 신경 손상으로 인한 통증은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순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다.
없어지지 않는 고통이라면 어쩌겠는가?
친구를 할 수밖에…
하지만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건
매일 적어도 30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약물 부작용이었다.
이 끔찍한 부작용을 1년 이상 견뎌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5년 동안 이런 고통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난 정상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주저앉아
부작용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할지 몰랐고,
부작용이 시작되면
숨을 쉴 수조차 없이 힘들어
어디든 자리를 잡고 눕거나 기대야 했다.
내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약물의 또 다른 부작용인 우울증이 찾아왔다.
난 우울증이란 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그놈이 찾아왔을 때 난 단번에 알았다.
그리고 방어를 하기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하나님, 언제까지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멍을 때리는 시간이 잦아지고
증상이 시작되면 울기 시작했다.
건강한 줄 알았던 내 몸이
이렇게 형편없이 부작용이란 놈에게 당할 줄이야…
혹시 운동량이 부족한 걸까?
혹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나?
혹시 내가 엄살을 떠는 건 아닐까?
혹시 증상을 무시하면 아무렇지도 않을까?
혹시 먹는 걸 건강식으로 안 먹어서 그런가?
혹시… 혹시… 혹시…
나에게 찾아온 갖가지 부작용들이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찾아온 것 같았다.
현재 내 몸에 나타난 약 부작용으로는
불면증과 식은땀, 숨가쁨과 메스꺼움,
어지러움, 체중 감소, 위장 장애, 골다공증,
시력 저하, 극심한 피로감, 편두통과 허리 통증, 무릎 통증,
그리고 끝내 찾아온 우울증이다.
정말 이렇게 매일 고통 속에서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내 삶의 질은 완전 바닥이다.
약물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
매일매일 처절한 나와의 싸움에서
나는 점점 지쳐간다.
위로가 주는 또 다른 부담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
“어떡하냐?”
“내가 뭐 도와줄까?”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달려갈게.”
어떻게든 격려해 주고
힘을 주고 싶어 한다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관심을 갖는 그 마음 자체가
나에겐 오히려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절실히 필요한 위로와 격려의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됐다.
왜냐하면, 나는 내 고통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들고 지쳐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또 다른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상처가 되는 말들
위로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말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 상처가 되는 말들…
내가 그 시기에 가장 듣기 힘들었던 말은
단순한 안부나 위로의 말뿐만이 아니었다.
암으로 치료를 받았던 사람이 내게 건넨 말들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이상하다. 난 별로 부작용 없었는데 넌 왜 이렇게 심해?…”
그리고 갱년기에 접어든 친구의 말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사실 우리 다 갱년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힘든 건 마찬가지지 뭐.”
“나도 갱년기라 불면증으로 엄청 고생하고 있어.”
주변에 암 치료를 받는 지인이 있는 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말들…
“내 친구는 수술하고 회사도 멀쩡히 다니던데?”
“너보다 더 심했던 사람도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던데 이상하네…?”
그들은 아마 나를 위로하고 싶었거나
정말 궁금해서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들은
마치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 같이 느끼게 했고,
나 좀 봐달라고 너무 유난을 떠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말들 앞에서
나는 더 스트레스를 받았고,
더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었다.
진정한 위로란 무엇일까
진정한 위로는 어떤 것일까?
내가 직접 경험을 하고 난 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진정한 위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정말 필요로 하는 위로가 무엇일까’를 먼저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그저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는다.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조용한 위로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의 한마디를 간절히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내가 아는 방식, 내가 옳다고 믿는 위로의 말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려 한다.
“나는 이렇게 위로받았으니, 너도 이게 필요할 거야.”
“나도 힘들었는데, 결국 다 이겨냈어.”
이런 말들이 때론 의도와 달리
상대방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너는 어떻게 이겨냈어?” 하고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나의 경험을 진심으로 나누는 건 분명 좋은 위로다.
하지만 “나도 그랬는데 이렇게 하니까 괜찮아졌어.” 하며
묻지도 않은 조언을 건네는 건,
이미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특히 “나도 경험이 있어서 잘 아는데…”
이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로가 아닌 설교로 들리기 쉽다.
그러니 위로란
내가 아는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음을 함께 느끼고 바라봐 주는 일’이다.
같은 고통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무게는 다르다.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 경험이 항상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위로의 간격을 지켜준다는 것
같은 말도 누군가에겐 약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짐이 된다.
그래서 먼저 살피고, 묻고, 기다린다.
말이 필요한 날엔 말로,
침묵이 필요한 날엔 침묵으로.
그렇게 상대방을 살피고 간격을 지켜주는 것도
하나의 위로가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위로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위로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진정한 위로가 된다.
꼭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뭔가를 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그 어떤 위로도 위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극심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위로의 말을 받아들일 힘이 생긴다.
그러니,
나의 위로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더 이상 내가 ‘위로가 될 거야’라는 확신으로
섣불리 다가가지 말자.
누군가 위로의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면 어떨까.
방치하고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깊고 강한 위로가 될 수 있다. 🌿
결론 | 진정한 위로의 의미
아직까지 모든 힘든 시간이 끝난 건 아니지만
난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 감사하고 위로받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를 위로할 힘도 생겼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위로의 방법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가장 힘든 시간에 더 많은 위로와 격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내 경험상,
나는 나를 내버려 두는 것이 위로가 되었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경험상 놔두는 게 좋았다고 그 사람에게도 똑같이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위로라고 느끼는 방식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위로는
내가 옳다고 믿는 말이 아니라,
상대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마음을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
위로에는 정답이 없다.
어떤 이는 조용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고,
어떤 이는 현실적인 조언에서 방향을 찾는다.
누군가는 “그랬구나”의 공감에서,
또 누군가는 “넌 할 수 있어”의 확신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진짜 위로는 말보다 마음이고,
가르침보다 공감이며,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건네는 것이다.
정말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차라리 말을 아껴라.
그냥 한 번 안아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Glory Kim
이 글은 Glory Kim의 순수 창작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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