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기적을 보아도 변하지 않을까?
왜 사람은 기적을 보아도 변하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기적을 보여주세요. 기적을 본다면, 하나님을 믿을 겁니다.”
“하나님이 내 앞에 나타나신다면, 그때는 반드시 믿을 거예요.”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앞으로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겠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된다면, 상식을 넘어선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면, 반드시 믿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주변에는 귀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직접 봤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죽었다가 천국을 보고 돌아왔다고 증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소름이 돋기도 하고 놀라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것을 꿈이거나 착각이라며 의심한다.
꿈에서 만난 예수님
나도 고등학교 시절 예수님을 꿈에서 본 적이 있다.
예수님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할지라도 나는 늘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때 나는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셨을까?
왜 “그러할지라도”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그 답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하면 합격할 수 있다고,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했는지 깨닫고 나서야 예수님이 왜 그런 눈빛을 하셨고,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정말 나의 꿈에 나타나셨던 걸까?
아니면 내가 단순히 꾼 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일까?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연약한가
우리의 믿음은 그렇게 연약하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을 보며 비판했던 나 자신도 돌아보면,
기적을 보고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같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으며 살아갔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평하고 우상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히 여호수아나 갈렙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을 거야.”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변할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생각하면, 나 역시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왜 믿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조차 그 경험이 곧 믿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리는 장면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의 형상을 인하여 지키던 자들이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태복음 28장4절)
그들은 자신들이 본 사건을 대제사장에게 그대로 보고했지만, 대제사장은 그들의 증언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돈을 주며 거짓말을 퍼뜨리게 했다.
“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마태복음 28장 13절)
결국, 경비병들은 진리를 숨기고 금전적 이익과 안전을 택했다.
경비병들이 진실을 숨긴 것은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로마 병사로서 무덤을 지키는 임무에 실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처벌을 피할 수 있고, 돈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왜 믿지 않았을까?
그들은 예수님 같은 메시아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정치적 구원자였다.
로마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나라를 세워줄 왕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분의 모습은 그들의 기대와 너무 달랐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믿음과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위치와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다.
결국 그들은 진실을 덮기로 선택했다.
자기 의와 교만함이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끝까지 부정할 사람이 있지? 나였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사람의 마음은 기적만으로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믿음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기적은 순간적인 두려움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또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선택을 하기 쉽다.
무엇보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믿음은 기적이 아니라, 성령님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역사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조차 진리를 믿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성령으로 새롭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기적을 요구하며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 20:29)
결국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기적이 아니라,
그 기적 너머에 계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길,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진짜 하나님을 ‘경험하고 살아내는’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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